노년의 삶과 정체성
= The Life and Identity of Old Age
- 저자[authors] 권수현
- 학술지명[periodical name] 哲學硏究
- 권호사항[Volume/Issue] Vol.149No.-[2019]
- 발행처[publisher] 대한철학회
- 자료유형[Document Type] 학술저널
- 수록면[Pagination] 1-28
- 언어[language] Korean
- 발행년[Publication Year] 2019
다국어 초록[Multilingual Abstract]
There have been distortions and stigmatizations about old age in the past, but the gerontophobia with the fear of increasing elderly population today is more serious. The gerontophobia becomes more difficult to resist when it spreads secretly on a social and cultural level than when it explicitly reveals the problem with efficiency in economic areas. The spread and solidifying of negative images about old age turns the old into a title with a negative connotation, which works as a kind of ideology. This negation and distortion of old age leads to a resistant movement to think of old age as optimistic which emphasizes the vitality and productivity that new old age will bring. However, the 'successful aging' which the optimism suggests can be a different aspect of distortion and a two-sided version of the coin. For the optimism model tries to put aging on the middle-aged extension against the paradigm of economic values, namely productivity and efficiency, and the independence of self-identity und therefore ultimately has limitations to deny aging. Then the truth will be neither useful nor useless, but somewhere in between. Old age is a process of finding oneself between resistance and resignation. Old age, as the time for us to live and to have to live in the world, is just a limited time of life given to us, just like in the days of youth and middle-aged years. This old age becomes special only by fully showing that death, which we try to ignore continuously until we get old, is not the outer boundary of life but is inextricably related to life and is the qualitative content of life.
국문 초록[abstracts]
노년에 대한 왜곡과 낙인찍기는 과거에도 있었지만 오늘날 노인인구의 증가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나타나는 노인혐오증은 보다 심각하다. 노인혐오는 경제적 영역에서 효율성과 관련하여 노골적으로 그 문제를 드러냈을 때보다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은밀하게 확산될 때, 이에 저항하기가 힘들어진다. 노년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의 확산과 고착화는 ‘노인’이라는 칭호를 부정적 어감을 갖는 말로 변질시키는데, 이러한 부정적 의미함축은 일종의 이데올로기로 작동한다. 이러한 노년에 대한 부정과 왜곡으로 축소된 담론에 맞서서 노년을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저항적 움직임이 생겨나고 있으며, 낙관론적 저항은 새로운 노년이 가져올 활력과 생산성에 대해 강조한다. 그러나 낙관론에서 표방하는 ‘성공적인 노화’는 왜곡의 또 다른 모습이자 동전의 양면일 수 있다. 이 낙관론적 모델은 생산성과 효율성이라는 경제적 가치와 독립성의 자기정체성을 배경으로 노화를 중년의 연장선에 놓으려함으로써, 결국은 노화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한계를 지닌다. 그렇다면 진실은 ‘쓸모없음’도 ‘쓸모있음’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 놓여있을 것이다. 노년은 “저항과 체념의 사이에서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노년은 지상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이자 또한 살아내야 할 시간으로, 청년이나 중년의 시기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삶의 제한된 시간일 뿐이다. 다만 이 노년은 죽음이 원래부터 삶의 밖에 놓여있는 외적인 경계가 아니라 삶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으며, 죽음이 삶에 내재되어 있는 질적 내용이라는 사실을 온전하게 드러냄으로써 특별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