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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년 : 2012 
구분 : 학위논문 
학술지명 : 서울대학교 대학원 : 과학사및과학철학전공 과학기술학 (박사) 
관련링크 : http://www.riss.kr/link?id=T12948572 

위험의 지구화, 지구화의 위험 - 한국의 '광우병' 논쟁 연구 = Globalization of Risk, Risk of Globalization, 'Mad Cow Disease' Controversy in Korea





초록 (Abstract)

  • 치명적이지만 국내에서 발생한 적이 없는 질병에 불과했던 BSE(일명 광우병)는 이제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정치사회적 쟁점이 되었다. 2008년 4월 격렬했던 미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를 거치면서 BSE 위험은 생명과 건강의 위협을 넘어 다양한 의미의 그물망에 놓여 있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자연적 질병인 BSE의 위험은 과학의 불확실성과 정책 결정의 정당성, 국가와 전문가의 책임, 권력위임과 민주주의, 신자유주의적 경제통합과 국가주권, 위험분배의 공정성, 축산업과 생태주의 등 이질적인 여러 쟁점들 속에서 논쟁되었다. 하지만 당시 논쟁은 정부가 새로 협상 타결한 수입위생조건으로 미쇠고기의 BSE 위험은 심각하게 증가했는가라는 ‘간단한’ 과학적 질문조차도 합의되지 않은 채 종결되고 말았다.
    이 연구는 2008년 BSE 위험 논쟁을 ‘예상되는 위험의 초국적 이동(transnational movement of anticipated risk)’이라는 문제 영역 속에 위치시키고 이런 쟁점들에 답해보고자 했다. 당시 BSE 위험은 국내에서 발생한 적은 없었지만 쇠고기 교역을 통해 한국으로 위험이 유입될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었다. 이렇게 발생가능성이 우려되는 위험이 국가 간 경계를 넘을 때는 위험은 곧잘 정치화되며 이 과정에서 과학지식과 국제 규범 등의 중요성이 대두된다. 과학과 국제 규범, 국제기구 등은 위험을 객관적으로 정의·평가하고 중립적으로 관리·규율할 것으로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문헌연구 및 심층인터뷰를 통해 이 연구는 ‘예상되는 위험의 초국적 이동’이라는 논쟁적 공간에서 과학지식과 글로벌 법적·과학적 규범들이 어떻게 구성되고 해석되었는지를 규명하고 했다. 특히, 과학기술학의 논쟁연구들이 가졌던 문제의식을 활용해 2008년 BSE 위험 논쟁의 당사자들 중 어느 한 입장을 사전에 지지하거나 전제하지 않고 논쟁 쟁점들이 구체적으로 전개되는 양상을 세밀히 따라가면서 분석하고자 했다.
    2장에서 보여주듯이, 국내에서 BSE 위험은 자연적 대상이면서 동시에 대중적 위험 담론으로 존재하면서 이 위험이 이해되고 해석되는 방식을 규정했다. 유럽과 북미의 광우병 위기, 한국의 BSE 위험 논쟁의 역사적 전개 과정에서 알 수 있듯, BSE 위험은 ‘경제적 지구화’ 과정에서 ‘공적 문제’로 부상했다. EU, NAFTA 등 경제통합에 이은 규제조화의 압력은 BSE 위험의 엄격한 평가와 규제를 방해했고 결국 경제통합 흐름에 계속 긴장을 가져왔다. 한국 정부도 한미 FTA 및 ‘4대 선결조건’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통상현안이었던 쇠고기 문제를 BSE 위험과 연결시켰다. 경제적 지구화와 위험의 이런 연결은 그 발생확률과 무관하게 BSE 위험이 당시 한국 사회가 직면한 주요 위험으로 인식되는 조건을 만들었다. 한미 FTA 추진으로 대항담론, 대항지식, 대항전문성이 성장하고 위험이 계속 ‘가시화’되면서 BSE 위험은 그 어떤 위험보다 더 ‘공적인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BSE 위험은 경제적 지구화와 이에 대한 저항의 역사적 관계에서 형성되어온 위험 담론이라고 볼 수 있다.
    이어 이 연구는 위험을 정의하고 평가하는 과학적 실행을 분석했고, 이를 통해 BSE 위험이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실재이기 보다는 구체적인 실천과 맥락 속에서 만들어지는 물질적 실체임을 보여주었다. BSE 위험은 그 내재적 불확실성 때문에 과학적 실천만으로는 온전히 평가되기 어려우며 규제의 정치문화, 산업적 이해, 연구의 실행문화, 대중의 관심 등을 고려하면서 결정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경우에는 구체적인 위험평가 지식이 ‘비지식’으로 생산되면서, 전문가들의 검증되지 않은 가정과 정책 방향이 규제기관의 ‘비지식의 문화’를 구성했고 이 문화적 관행이 BSE 위험의 맥락적인 불확실성과 잠재적 위협을 수용가능한 것으로 만들었다.
    담론적‧물질적 구성물로서 BSE 위험을 다룬 논문의 1부에 이어 2부는 위험을 국가적·초국적으로 규제하는 국내 전문가회의와 협의회, 국제기구, 국제통상법, 국제표준의 형성과 국지적 적용을 다루었다. BSE 위험이 국가적‧초국적으로 정의되고 관리되기 위해서는 과학, 행정, 경제, 사법의 영역에 걸친 다양한 제도와 실천이 요구되었다. 이를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본 연구는 농림부 전문가회의의 자료, 관련 통상 협정, 국제표준기구인 OIE의 규약 및 회의록, 국내 기관의 참석보고서 등을 분석하고 국내 입법 논쟁과 사법심사까지 조사했다. 이를 통해 미국에서 개발된 후 국제기구들이 채택해온 ‘위험분석법’과 같은 지식, WTO와 같은 경제행정 체제의 법적 권위, 국제표준기구인 OIE의 인식적‧정치적 정당성 등이 국제규범을 ‘글로벌 규범’으로 자연화하면서 BSE 위험을 초국적으로 규율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BSE 위험은 위험평가 및 관리의 국지적 조건과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불확실한 것이 될 수 있었지만, 이런 제도와 실천을 통해 통제가능하고 계산가능한 것이 되었다.
    또한 이런 ‘글로벌 규범’의 국지적 적용과 수용에서 국가는 스스로 약하고 무력한 척 하면서 ‘교활한 국가’가 되었는데, 이는 초국적 레짐이 주도하는 지배적인 지구화 전략에 편승하고자 하는 국가의 ‘소극적’ 위험관리 정책을 정당화해주었다. 국회 가축전염병 예방법 개정 특위와 헌재의 수입위생조건의 기본권 심사를 분석함으로써, 사법부는 행정부와 글로벌 규범에 위험을 예방할 권력을 이양하고 행정부는 다시 글로벌 기구와 규범에 그 권력을 위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권력 떠넘기기’의 결과, 맥락적 조건에서 미지의 불확실한 위험은 국가나 초국적 기구의 책임이 아닌 개인의 선택 문제가 되어버리는 이른바 ‘위험의 개인화(individualization of risk)’가 나타나고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2008년 미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는 위험의 개인화 전략을 주도하는 초국적‧국가적 ‘위험 정의 권력’ 장치들이 시민들의 저항에 부딪힌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연구는 논쟁적인 BSE 위험의 초국적 이동과 규제를 문제 영역으로 삼고, 과학과 국제규범의 역할을 분석했다. 이를 통해 BSE 위험이 과학, 정치경제, 문화 등으로 구성된 사회기술적(socio-technological) 구성물이라는 점을 알 수 있었고 이 위험을 국가적‧초국적으로 관리하는 여러 제도, 지식, 실천은 불확실한 위험의 개인화를 유도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연구 결과는 2008년 촛불집회 이후 ‘광우병 위기’의 재발을 막기 위해 대안으로 제시되었던 해법들, 즉 대의정치 혹은 생활정치를 강화하거나 이성적 공론장을 공고히 하는 방식으로 이해하거나 접근하기 어려운 ‘정치’가 존재한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과학적 위험평가와 정책결정, 국제규범의 생산과 국지적 해석 및 적용 등은 위험을 특정하게 형성하면서 우리의 삶과 안전을 규정하는 중요한 정치의 현장인 것이다. 따라서 이런 정치의 현장을 탐색하고 그 권력의 구조와 동학을 규명하는 것은 ‘광우병 위기’의 재발을 막는 일일 뿐만 아니라 대안적 위험정치와 환경정치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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