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게 죽게 하겠다" 대통령의 공약 실현될까
▲ 지난 3월 24일 안락사 법 개정을 주장하는 데모가 열렸다. "내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싶다""삶, 예. 생존, 아니오"라는 피켓이 보인다. |
원래 안락사는 말 그대로 부드러운 죽음, 편안한 죽음을 뜻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불치의 병에 걸려 심적·육체적으로 지독한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그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인위적으로 죽음을 가하는 것을 말한다.
안락사 문제는 철학, 윤리학, 종교적, 법적인 가치가 혼합된 복합적인 개념이라 오래전부터 안락사 찬·반대자에게 무수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또 안락사는 벨기에,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불법이다.
▲ "내 죽음은 내것이다." |
ⓒ credit .Francois Lafite |
그러므로 가톨릭 국가인 프랑스도 안락사는 불법이다. 그런데 2003년 9월에 프랑스 사회를 뒤흔든 사건이 일어난다. 2000년 9월, 19세의 젊은 청년 벵상 엥베르 (Vincent Humbert)가 대형 교통사고로 전신마비와 실명증, 실어증이라는 중병에 걸린다. 그러나 정신은 멀쩡해 유일하게 살아있는 청각과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였다. 그는 사고가 발생한 지 2년 2개월째인 2002년 11월에 당시 시라크 대통령에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요청한다.
그는 치유할 수 없는 병 때문에 자신뿐만 아니라 간호하는 어머니의 고통을 덜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죽음을 선택할 권리'라고 여겨졌다. 당연히 그의 요청은 거절된다. 시간은 흐르고 아들의 고통을 곁에서 힘겹게 지켜본 어머니가 2003년 9월에 죽고자 하는 아들을 돕기로 한다.
3일 후, 그녀는 아들에게 독약의 일종인 약품을 주었다. 그러나 병원 측에서는 혼수상태에 빠진 벵상을 살리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고 어머니 마리는 즉시 경찰에 연행되어 간다.
다음 날인 9월 25일 벵셍 엥베르의 <죽도록 해주세요>라는 책이 발간되고, 어머니 마리는 연행에서 풀려난다. 다음 날 벵상을 살리려고 하던 의사는 가족과의 면담 끝에 결국 '포타슘 염화물'을 투여하여 벵상은 소원대로 죽게 된다.
2004년 1월, 벵상에게 독약을 투여한 담당의사와 벵상의 어머니 마리 벵상은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되고, 결국 2006년 2월에 면소된다.
당시 프랑스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이 사건으로 안락사에 대한 논의가 다시 제기되었고, 2005년에 부분적인 안락사를 허용하는 레오네티(Leonetti) 법이 통과된다. 이 법 때문에 불치병 환자가 죽을 목적으로 모든 음식물과 음료수, 약 투여 등를 거부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되었다. 소극적인 안락사다.
그러나 안락사를 주장하는 '품위 있게 죽을 권리 협회(ADMD)'에서는 이 법이 충분치 않다고 주장한다. 안락사는 고통없이 편안하게 죽는 걸 의미하는데, 이런 음식 거부는 환자에게 고통을 배로 주기 때문이다.
안락사 요청 사례 계속 이어져... 2005년 '소극적 안락사' 허용
2005년부터 시행된 소극적인 안락사를 허용하는 레오네티 법이 시행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프랑스에서는 이후 적극적인 안락사를 요청하는 사례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08년 불치병에 걸린 24세의 혜미가 당시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안락사 요청 서신을 발신하였다. 같은 해 희귀병으로 격렬한 고통과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지는 병에 걸린 52세의 샹탈도 대통령에게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요청하는 서신을 보냈지만, 거절당했다. 결국, 그녀는 자살하고 만다.
폐암에 걸린 기자이자 소설가인 56세의 마리도 올 3월에 <6개월 남은 인생>이란 책을 발간하였다. 그녀는 이 책에서 "프랑스에서도 언젠가는 본인과 같이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법이 나와야 한다"며 안락사 허용 투쟁 기록을 남겼다. 이 책은 곧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결국, 마리는 안락사가 허용되는 벨기에로 가서 인생을 마감하였고, 이 책은 사후에 발간되었다.
2007년 3월 프랑스 남중부 지방인 도르돈뉴 법원에서는 65세 췌장암 말기 환자에게 치사량의 '포타슘'을 제조한 의사에게 1년 감옥행(집행유예)을 선고하였다. 이런 정치적, 사회적인 '특별한' 상황에서 "적극적인 안락사를 허용하겠다"는 올랑드 대통령의 공약이 등장했고, 최근 올랑드 대통령이 저명한 시카르 (Sicard) 의사에게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검토하도록 지시한 것이다.
올랑드 대통령의 한 측근 말대로 레오네티 법이 불치병 환자에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주었다면 이번에 새로 개정될 법은 환자들이 죽을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는 법이 될지는 시카르 의사의 검토 안이 나와야 알 수 있다. 올 연말까지는 검토 안이 나올 것으로 예정된다.
본인이 원할 때, 죽음을 부여받을 수 있는 적극적인 안락사는 많은 프랑스인이 지지하고 있다. 올 3월 해리스 인터랙티브(Harris Interactive) 여론 조사 기관에 의하면 91%의 프랑스인이 안락사에 동의하고 있다고 밝혀졌다.
한편으로는 프랑소와 미테랑 전직 대통령도 안락사로 사망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올 4월에 출간된 <마지막 금기, 대통령 건강에 대한 누설>이란 책에서 기자 출신의 두 저자 드몽피옹 (Demonpion)과 레제(Leger)는 14년 동안 암으로 고통을 받은 미테랑 대통령이 1996년 본인의 의사에 따라 안락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안락사 문제 다룬 영화 개봉... 솔직히 좀 불편하기도
▲ 안락사 문제를 다룬 신개봉 영화 포스터 |
ⓒ 한경미 |
지난 19일, 때마침 안락사 문제를 다룬 영화 <봄의 몇 시간을 (Quelques heures de printemps>이 개봉되었다. 본 기사를 준비하고 있던 기자는 개봉한 첫날에 이 영화를 보러 갔다. 뇌에 악성 종양이 생겨서 심한 두통에 시달리는 늙은 노모가 안락사를 결정한다. 감옥에서 1년 8개월의 형을 치르고 나온 아들은 노모의 결정을 받아들인다. 프랑스에서는 적극적인 안락사가 불가능하기에 노모는 스위스에 있는 한 협회의 도움으로 스위스로 가서 아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독약을 먹고 죽는다.
아들을 사랑했음에도 평생 표현을 못하고, 아들과 계속 불편한 관계를 맺었던 노모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 중에서 "내 아들아! 너를 무척 사랑한다"라고 말했던 장면은 무척 감동적이다. 또, 그런 식으로 생을 마감하는 노모의 행동에 약간의 불편함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우연히 이 세상에 태어났듯이, 우리 삶의 마감도 우연에 맡겨야 하는 것은 아닌지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다.
어쩌면 영화 속 노모가 정상인처럼 멀쩡하게 생활하고 있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만약에 사족을 쓰지 못한 채, 회복의 가능성 없이 엄청난 고통을 받으며 죽을 날만 손꼽는 중환자의 모습으로 그려졌다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관련 기사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820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