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과열된 제대혈시장, 돈냄새 풀풀

지난 19일 오후 서울시내의 한 산부인과병원 로비. 진료를 받으러온 임산부들이 오가는 통로 한편에 하얀색 의사 가운을 입은 젊은 여성이 책상 위에 홍보물을 수북이 쌓아놓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가 앉은 책상 앞으로는 제대혈은행 상품을 홍보하는 엑스배너가 세워져 있다. 분명히 하얀색 가운을 입었지만 의사는 아닌 그는 바로 이른바 ‘제대혈 코디네이터’(이하 제대혈 코디)이다. 제대혈 코디는 산부인과병원에 상주하면서 임산부들에게 제대혈은행 가입상품을 설명하고, 판매하는 이들을 말한다.

분만 건수가 많은 대형 산부인과병원에서는 이러한 제대혈 코디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진료를 받으러온 임산부들이 병원 직원들에게 제대혈은행 상품 가입에 대해 문의하면 병원 직원들은 제대혈 코디를 연결해준다. 임산부들을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산부인과병원에 입주만 하면 자동적으로 일정 규모의 영업이 보장되기 때문에 최근 ‘인하우스’(in-house) 형태의 제대혈은행 상품 영업이 성행하고 있는 것.

제대혈(cord blood, 臍帶血)은 출산 때 탯줄에서 나오는 탯줄혈액을 말하는 것으로 일반 혈액과는 달리 백혈구와 적혈구·혈소판 등을 만드는 조혈모세포를 다량 함유하고, 연골과 뼈·근육·신경 등을 만드는 간엽줄기세포도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그 활용가치가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 특히 난치병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요즘 산모들 사이에서는 민간 제대혈은행에 제대혈을 보관하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고, 제대혈은행 시장도 규모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 과열된 제대혈은행 시장, 그 이면 파헤쳐보니…

그런데 병원 직원도 아닌 민간 제대혈은행 전문영업사업이 하얀색 가운을 입은 채 병원 안에 자리를 잡고, 영업행위를 하고 있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이러한 의문점을 풀 수 있는 문건을 베이비뉴스가 최근 단독으로 입수했다. 15년 만에 500억 원대 규모로 성장하면서 업체 간 경쟁도 치열해진 제대혈은행 시장, 그 이면에서는 현행법이 미치지 못하는 틈새를 파고드는 추악한 상혼의 실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문건은 A 제대혈은행 측이 산부인과병원 측에 ‘인하우스 영업’ 협력을 제안하면서 제안하는 내용들로, 그중 핵심은 제대혈은행 상품 가입 1건당 수익금 30만 원을 책정해 병원 측에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2년의 장기 계약을 하게 되면 1억 5,000만 원을 선지원 형태로 제공할 수 있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또한 병원 측에 42인치 PDP를 2대 지원하고, 반기별로 병원 필요물품 명목으로 200만 원을 지원하겠다는 내용도 있다. 상담 받는 산모들에게는 기본 선물을 제공하고, 1만 원 상당 임신 축하팩을 지원할 예정(월 분만 200건 기준)이라는 내용도 있다.

이 같은 문건의 존재 여부에 대해 A 제대혈은행 홍보팀 관계자는 “우리 측 문건이 맞는 것 같은데, 3~4년 전에 영업사업 측에서 만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하지만 지금 현재 이러한 내용으로 영업행위를 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나 또 다른 제대혈은행 측 관계자들의 입장은 다르다. B 제대혈은행 영업 관계자는 “영업에도 기본적으로 지켜야할 룰이 있는데, 경쟁이 과열되면서 그 룰들이 무너졌다”면서 “최근 들어 경쟁이 더 치열해지면서 산부인과를 잡기 위한 업체들의 도를 넘은 행위가 더 심화되고 있지 줄어들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 ‘제재할 근거 없다’는 복지부, 최선일까?

 ▲ A 제대혈은행 측이 산부인과병원 측에 병원 내 영업에 대한 협력을 요구하면서 제시한 댓가들을 확인할 수 있는 문건이다. ⓒ베이비뉴스

실제로 병원 측의 전문의나 직원, 제대혈 코디 등으로부터 제대혈 보관의 중요성을 설명들은 뒤, 특정 제대혈은행의 상품을 보관하도록 유도하거나 강요하는 말을 들었다는 사례들이 산모들이 주로 찾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자주 목격되고 있다. 유명 산부인과병원의 전문의가 특정 제대혈은행 상품에 대해서는 제대혈 채취를 거부하고 나서 복지부 측에 민원이 제기된 적도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복지부도 과열된 제대혈은행 시장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미 파악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복지부는 현행법상 제대혈은행 시장에 개입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생명윤리과 관계자는 베이비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제대혈은행들의 영업행위에 대해서는 전해 들어 알고 있지만 현행법으로는 제재를 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제대혈은행 영업행위에 대해 정부가 나서 규제를 하는 것이 맞는지 아직 내부적으로 논의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논의해볼 필요성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지난해 7월 1일 시행에 들어간 제대혈 관리 및 연구에 관한 법률은 제대혈의 기증 및 위탁에 따른 제대혈관리업무, 제대혈은행의 허가 등에 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함으로써 제대혈 및 제대혈제제(製劑)의 의학적 안전성을 확보하고 제대혈의 관리시스템을 구축해 의학의 발전 및 국민보건의 향상에 이바지하려는데 목적을 두고 있으나 제대혈은행 시장의 영업행위까지에는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인 것.

국내 제대혈은행은 총 18개에 달한다. 이중 17곳이 복지부의 허가를 받았고, 1곳은 자격기준 미달로 아직까지 허가를 받지 못했다. 베이비뉴스가 제대혈은행 업계 관계자들을 통해 확인한 결과, 현재 인하우스 영업을 하고 있는 제대혈은행은 모두 복지부 허가를 받은 곳으로 4개로 압축된다. 그중 한 곳이 전국 100여 곳의 산부인과에서 인하우스 영업을 하고 있으며 나머지 3곳도 협력병원을 모두 합산하면 100여 곳 정도가 된다. 전국 200여 곳의 산부인과에서 인하우스 영업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제대혈은행이 많아지면서 더 내려갈 수도 있는 제대혈은행 보관상품의 소비자가격이 내려가지 않고 있는 이유가 바로 병원 측에 무언가 대가가 제공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코디 영업과 소비자가격을 연관 짓는 것은 곤란하다”는 게 인하우스 영업을 하고 있는 제대혈은행 측의 입장이지만,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우리가 낸 보관비용이 결국 병원으로 들어가고 있는 게 아니냐”고 항변한다. 결국 민간 제대혈은행의 과열 경쟁이 소비자들의 피해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번 국감에서는 정부의 부실한 제대혈은행 관리가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은 이번 국감에서 복지부의 제대혈은행 허가과정이 부실했다는 점을 파고들었고, 제대혈관리법 개정안과 관리체계 개선방안을 마련할 것이라는 의지를 밝혔다. 특히 신 의원은 이번 국감 마지막 날인 24일 복지부 종합국감에서 정부의 부실한 제대혈은행 관리 이슈를 다시 꺼내들고, 제대혈은행에 대한 복지부의 체계적인 관리 부실로 제대혈시장이 과열되고 있고 결국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계획인 것으로 확인됐다.

신의진 의원은 “현행법에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복지부가 제대혈은행 시장의 불합리한 영업행위에 대해 수수방관하고, 국민들이 피해를 입도록 하고 있는 것은 문제가 크다”며 “제재 근거가 없다면 법을 개정하거나 관리체계를 만들어서라도 제대혈은행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관련 기사 :

 http://www.fnnews.com/view?ra=Sent0901m_View&corp=fnnews&arcid=12102409265060&cDateYear=2012&cDateMonth=10&cDateDay=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