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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장 맡은 법의학 권위자 이윤성 교수

“후일 내가 죽음 앞두게 되면 인공호흡기는 2주만 하게 했어요”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ㆍ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장 맡은 법의학 권위자 이윤성 교수
ㆍ지갑에 사전의료의향서
보관증 지참 “평소 내 생각 잘 아는 자식들에 대리결정 맡겨”

누구나 홀로 통과해야 하는 삶의 마지막 관문, 바로 ‘죽음’이다. 인류의 이 숙명을 놓고 현대에 이르러선 조금 더 복잡한 문제가 생겼다. 죽음을 돌이키기 어려운 환자도 인공호흡기 등을 이용해 ‘의학적 생명’을 이어가는 게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2009년 대법원 판결로 인공호흡기를 뗀 ‘김할머니’ 사건 이후에야 죽음을 앞둔 환자의 연명의료 문제가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그후 4년 만에 ‘연명의료 결정에 대한 권고안’이 완성돼 세상에 나왔다.

법의학 권위자인 서울대 의대 이윤성 교수(60)는 이 권고안을 최종적으로 다룬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산하 특별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아 종교계·의료계·환자단체 간 논의를 중재했다. 지난 5일엔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장으로 취임해 죽음과 생명, 윤리 문제를 사회적으로 다루는 짐을 다시 지게 됐다.

그는 ‘진실을 알고 싶다’는 열정으로 시신 부검에 밤을 새우던 청년기를 보내고 지금은 사회 각계의 인사들과 죽음, 임종에 대해 고민하고 논의하는 법의학자다. 이윤성 교수에게 ‘죽음이 무엇이냐’ 물었다. “아무것도 없는 무(無)”라는 답이 돌아왔다.

법의학 권위자인 이윤성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장이 지난 18일 서울대 의대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다가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옆에는 그의 손때가 묻은 법의학 전문서적들이 쌓여 있다. | 김정근 기자 


■ 티베트에선 땅에 묻는 게 저주… 결국 생각의 차이

- 연명의료를 설명하면서 곧잘 죽음과 장례에 대한 개인적 생각을 유쾌하게 밝히는 것을 봤습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까.

“당연히 두렵죠. 하지만 직업이 이렇다보니 다른 사람에 비해 ‘죽음이 뭔가’ 하는 생각은 많이 한 편이죠. 전 죽으면 아무것도 없다고 봐요. 그런데 실은 인생을 잘 살려면, 죽은 다음에도 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더 나아요. 기독교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천국이 있다거나 불교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윤회가 있다거나 하면 현재를 더 보람차게 살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목적을 벗어나서 죽음 그 자체만 생각하면, 글쎄요, 전 그냥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 베스트셀러가 된 예일대 셸리 케이건 교수의 책 <죽음이란 무엇인가>에서도 그 문제가 주요하게 다뤄집니다. ‘죽은 뒤에도 나라는 존재가 있을까’ ‘영혼이란 게 있는가’이죠.

“ ‘영혼’은 사실 인류가 번개나 벼락이 치면 절대자의 분노라고 생각하던 그 시절에 생각해낸 것이라고 봐요. 영혼이란 것의 상당부분은 의식이나 정신활동으로 밝혀진 게 많아요. 아직 다 밝히지 못해서 그렇지 궁극적으로 영혼은 그런 것(정신활동)일 거라고 생각해요. 바닷물이 있는데 파도가 쳐서 물방울 하나가 툭 떨어져 공중에 잠시 떠 있는 것, 그게 인생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 물방울이 곧 떨어지면 바다의 일부분이 되잖아요. 분자는 다시 섞이고요. 만에 하나, 영혼이 있다 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존재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 불교의 세계관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아내의 권유로 절에 다니기는 합니다. 그런데 스님께 혼났어요. 윤회를 믿지 않는다고 했다가(웃음).”

- 죽음이 다가왔을 때 연명의료를 어디까지 받을지 생각해놓은 게 있나요.

“전 대리결정하게 했어요. 자식들이 평소의 제 생각을 잘 아니까. 사전의료의향서엔 대리결정케 하겠다는 내용 위주로 썼던 것 같아요. 아, 인공호흡기는 2주만 하고 가망이 없으면 떼어버리라고 썼던 것 같아요.”

■ 지갑에 사전의료의향서 보관증 늘 가지고 다녀

이 교수는 지갑에서 사전의료의향서 보관증을 보여줬다. 갑자기 죽음을 맞게 됐을 때, 병원에선 이 ‘카드’를 확인하고 사전에 이 교수가 써놓고 보관해놓은 사전의료의향서의 내용을 존중할 수 있다. 그는 사전의료의향서 보관증과 함께 장기기증 희망자임을 보여주는 카드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 장례는 어떻게 치렀으면 합니까.

“일단 화장을 한 다음에 그 재를 밥과 섞어서 뿌렸으면 해요. 그러면 동물이 먹을 수 있잖아요. 다람쥐가 주워먹고 어디로 가든지 알 게 뭐예요. 아무것도 남지 않죠. 만약에 납골당에 간다면, 자식들이 찾아가야 하는 장소가 생기잖아요. 수목장 역시 (유골이 묻힌) 나무가 특별해지는 거고. 그러면 자식들이 그 나무를 찾아가야 하고. 전 그냥 기억에만 남고 싶어요. 납골당이든 나무든 나와 특별한 관계가 있는 건 아니잖아요. 일부러 관계를 맺어서 기억하게 만드는 것은 인위적인 것 같아요. 사람들의 기억에 남으면 남고 아니면 마는 거죠. 그리고 어차피 증손자 이렇게 가면 기억에 남겠어요.”

- 한국에선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장례법인 것 같은데요.

“생각 나름이에요. 티베트에는 장례관습이 다섯 가지가 있대요. 고승은 탑장을 한대요. 작은 탑에 시신을 ‘미라’처럼 모시는 거죠. 일반 승려들은 화장을 한대요. 그리고 일반적인 사람들은 (독수리 등에게 시신을 먹게 하는) 조장을 하고요. 제가 관심이 있어서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찾아봤는데 사실 그 장면은 끔찍하긴 해요. 장례를 지낼 때 벌써 독수리들이 와 있고…. 여하튼 네 번째, 어린이와 병자가 죽으면 수장을 한대요. 마지막으로 범죄자가 죽으면 토장을 한대요. 티베트에선 땅에 묻는 게 저주인 거죠. 우리에겐 가장 편안한 죽음인데. 아까 말했던 것처럼, 인생이란 물방울 하나 튀었다가 다시 바다로 떨어지는 것일지도 모르는데, 결국 생각의 차이 아니겠어요.”

- 내 살을 다시 동물에게 돌려준다는 개념인 듯합니다. 식성은 어떻습니까.

“전 다 먹어요. 잡식 합니다(웃음). 사람의 살이 동물의 살보다 더 중요하고, 그중에서도 내 가족의 살이 더 중요하고, 내 살은 더욱더 중요하고 그런 건 있겠지만, 살은 그냥 살이지요. 살아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현상’ 같아요. 뇌세포의 활동, 심장세포의 활동 등으로 이뤄진 현상이오. 촛불에 있는 빨갛고 파란 불꽃 부분, 그게 사실은 탄소가 산화하면서 우리 눈에 형체로 보이는 것이거든요. 사람이라는 것도 아버지, 어머니의 유전자로 세포가 만나서 마구 분열하다가 아버지, 어머니 닮은 몸뚱어리로 나와서 살아가다 후손 만들고 없어지는 그런, 촛불이 켜졌다가 꺼지는, 현상 같아요. 비약인가요(웃음).”

-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권고안’이 완성됐습니다. 위원회는 권고안의 핵심이 ‘환자의 자기결정권’이라고 강조하는데 한국에선 그 개념이 아직 생소합니다.

“예전엔 암에 걸려도 본인한테 잘 안 가르쳐줬어요. 우리나라는 서양과 달라서 ‘우리’라는 인식이 강하죠. 그래서 (환자를) 보호해준다는 뜻에서 얼마나 괴로울까’ 하면서 가족들이 나서는데요, 조금은 쿨해지자는 거죠. (연명의료를 어디까지 받을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일단 기회를 줘야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사람한테 ‘괜찮아, 살 수 있어, 마음 굳게 먹어’라고만 말해주다 환자의 의식이 없어지면 불행해지잖아요.”

■ 연명의료 권고안 논쟁 차단하기 위해 중립적 용어로

- 권고안을 만들면서 용어를 많이 바꿨습니다.

“ ‘연명치료’를 ‘연명의료’로 바꾸고 ‘(연명의료의) 중단’도 ‘결정’으로 바꾸고 하여튼 가치판단이 들어간 용어는 모두 중립적으로 바꿨죠. 가장 중요한 건 환자의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점이니까 다른 부수적 논쟁은 차단하기 위한 선택이었죠. 그런데 ‘결정’이란 것도 어느 날 갑자기 해보라고 하면 못하니까 다같이 평상시에 죽음에 대해 생각해봤으면 해요. 권고안에는 의사가 환자에게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를 줘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죠.”

이 교수가 위원장을 맡았던 위원회는 죽음을 돌이킬 수 없는 임종기 환자가 심폐소생술·인공호흡기 등 특수연명의료를 얼만큼 받을 것인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고, 환자가 명시적으로 의사를 표하지 못했을 때는 가족이나 대리인, 의사가 함께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권고안을 18일 확정했다. 다만 ‘가족이 대리해 판단해야 할 때는 제3의 기구를 거쳐야 한다’는 환자단체의 의견, ‘법제화까진 안된다’는 종교계의 소수의견도 권고안 보고서에 함께 남겼다. 이 교수는 “ ‘의료계에선 당연한 얘기를 왜 하느냐, 임종기 환자가 문제가 아니라 식물상태의 환자 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반응”이라면서 “하지만 여기까지 의견을 모으는 것도 참 힘들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장을 새로 맡게 됐습니다. 어떤 곳인가요.

“(정자와 난자의) 수정부터 죽음에 이르는 모든 윤리적 문제를 다룹니다. 연명의료 문제도 물론 포함되고요. ‘줄기세포 연구를 어디까지 할 것인가’도 고민해야 합니다. 미국에선 정자·난자를 제공하면 자궁이 건강한 여자의 몸을 빌려준다는 인도업체의 광고가 TV에 나와요. 한국에서 누군가 그런 것을 하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등을 고민하고 사회적으로 의견을 모아야 하는 주제들이 많은 곳입니다.”

- 교수님은 법의학 권위자로 유명합니다. 법의학을 택한 이유가 뭔가요.

“추리소설을 좋아하긴 했는데, 무엇보다도 ‘사실’이 뭔지 아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사실이 뭘까…. (그는 잠시 생각하듯 말을 끊었다) 그런 것에 관심이 많았죠.”

- 때로는 시신의 냄새가 그리울 때도 있다고 말한 것도 봤습니다.

“한창 부검을 할 때는, 부검을 한 지 꽤 되고 나면 그 냄새가 그리울 때도 있었죠. 처음 법의학자로서 부검을 했던 건 경상대 의대에 부임한 뒤였던 것 같네요. 거기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하고 너무 멀어서 현지에서 변사체를 검시하는데 지역 개업의들이 돌아가면서 하고 있었어요. ‘그러면 내가 해야겠다’ 싶어서 그 지역 부검을 도맡았어요. 열정이 많을 때였죠. 나중에 국과수 일도 했고요. 하루에 10구씩도 했던 것 같아요.”

- 가족의 주검을 봤을 때는 어땠나요.

“제가 한창 부검을 많이 할 때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죠. 손을 만졌을 때 감각이 확 달랐어요. 아무래도 감정이 들어가니까요.”

- 유명 사건에 많이 참여했습니다. 만삭부인 살해사건 재판에서는 캐나다 법의학자와 공방을 벌였는데요.

“그 법의학자는 사망 뒤 시체의 상체가 아래로 숙여진 채 시간이 오래 지나면 마치 목졸라 죽인 것처럼 보이는 흔적이 남는다는 논문을 쓴 적이 있는 분이었죠. 근데 아마 피해자 남편의 변호인 측이 그분에게 자료를 다 준 게 아니었던 모양이에요. 그런 식으로 출혈이 일어난다면 목 아래쪽에만 생겨야 하는데 이 시신에선 목 뒤에도 생겼거든요. 그건 안 보여준 거죠. 사망원인은 사실 그렇게 논란의 여지가 없었어요.”

■ 이태원 살인사건 같은 ‘억울한 죽음’이 늘 화두

이윤성 교수는 1997년 한 대학생이 이태원의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살해당한 이른바 ‘이태원 살인사건’의 부검의였다. 검찰은 당시 화장실에 있었던 ‘에드워드 리’와 ‘아더 패터슨’ 중 한국계 미국인인 에드워드 리를 살인죄로 기소했지만 증거부족으로 무죄 판결이 났다. 대법원은 당시 “여러 정황으로 볼 때 패터슨이 진범일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하지만 주한미군의 아들인 패터슨은 미국으로 가버린 뒤였다. 당시 검찰은 에드워드 리를 기소하면서 “피해자의 상처 위치와 방향을 볼 때 피해자보다 덩치가 큰 사람일 것”이라는 부검의의 의견을 참고했다고 밝혔다.

- 이태원 살인사건의 부검은 아쉬움이 많이 남을 듯합니다.

“제가 현장에 갔을 때 햄버거집은 정상 운영되고 있었고 화장실은 깨끗하게 청소돼 있더군요. 혈흔이라든가 흔적은 전혀 남아있지 않았고 사진만 두 장 본 게 전부였죠. 부검 때는 화장실에 (용의자가) 두 사람 있었는지조차 몰랐어요. 여하튼 부검을 해보니 젊은 대학생 청년이 저항도 못하고 죽었거든요. 또 피해자의 목에 찔린 상처의 방향을 보니까 수평이었어요. 당시 검사와 참 친한 사이였는데, 그래서 참고가 되라고 얘길 해준 거였는데, 나 때문이었으면 미안하지만…. 근데 그때로 되돌아간다면 어떻게 했을까. 아무리 다시 생각해봐도 똑같은 얘길 했을 것 같아요. 가슴 아팠던 사건이 그 사건을 포함해서 네 가지 정도 생각나네요.”

- 유명인사의 사건도 포함돼 있습니까.

“유명인의 사건이나 일반인의 사건이나 저의 자세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부검 결과가 나왔을 때) 번잡스러울 거냐, 조용할 거냐의 차이죠.”

- 검시관 양성이 어려운 현실을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 국과수에 법의관들이 있는데 검시관과 법의관은 어떻게 다릅니까.

“지금 국과수에 소속돼 있는 법의관들은 검시에 대한 독자적인 권한을 갖고 있지 않죠. 이를테면 미국은 변사체에 대한 권한을 검시관이나 법의관이 갖고 있어서 현장조사까지 다 할 수 있어요. 한국의 법의관들은 현장은 못 보고 시신만 보게 되죠. 현장이라는 게 굉장한 맥락을 보여주는 것인데 말이죠.”

- 검시, 부검, 검안 여러 개념이 나오는데 어떻게 이해하면 됩니까.

“시신을 훼손해서 검사하는 것을 ‘부검’이라 하고요, 훼손하지 않고 눈으로 보거나 두들겨보는 게 ‘검안’이죠. 둘을 합한 개념이 ‘검시’입니다.”

- 흔히 죽음 앞에서는 평등하다고들 합니다. 많은 죽음을 접했는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글쎄요. 죽음에서는, 사회적 지위로 인한 불평등보다는 ‘억울한 죽음’이 문제죠. 방금 얘기한 검시관 제도가 있다면 억울한 죽음을 훨씬 많이 밝혀낼 수 있어요. 경찰도 나름대로 수사를 하고, 법의관도 현장조사와 변사체 조사를 해서 독립적으로 의견을 정리하고, 그리고 나중에 양쪽 의견이 합쳐진다면 잘못을 저지르기가 훨씬 어려워져요. 검사가 경찰로부터 보고받고 지휘해서 부검을 하게 하는 지금의 방식과 비교할 때 말이죠. 검시관 제도가 없으니까 독립적인 제2의 의견이 성립될 기회가 사라지는 거죠. 지금도 억울한 죽음이 많이 있을 거예요. 우리는 부실한 검시제도 때문에 그런 죽음들을 방치하고 있어요. ‘억울한 죽음’은 늘 저의 화두였기 때문에 지금도 검시제도가 부실하다는 생각을 계속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