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진단 | 막연한 두려움이 기술 발전 막아
Q.유전자 진단과 치료 기술 어디까지 왔나.
오민규 고려대 생명공학과 교수 : 유전자 진단 분야에서 전반적으로 우리나라는 기술력이 세계적인 수준이다. 하지만 암 진단 기술력은 더 발전할 필요가 있다. 암의 경우 하나의 유전자가 아니라 다양한 유전자가 복합적 요인에 의해 발생해 진단이 어렵다. 진단을 위한 데이터도 불충분하다. 최소 수만 명의 데이터는 확보해야 진단 확률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
이윤성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장(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 : 신원 확인과 친자 확인 분야에서는 유전자 검사 기술이 매우 높은 정확도를 자랑한다. 단순 실수를 제외하면 정확도는 거의 100%다. 유전자 검사 기술이 등장하자 그간 이용되던 다른 신원 확인 방법은 모두 빛을 잃었을 정도다.
김태형 테라젠이텍스 게놈사업본부장 : 미국 파운데이션메디슨이란 기업은 암 환자의 암 조직과 암 세포 돌연변이를 해독해 항암제를 만들었다. 이런 기술로 혈중 암세포를 찾아내는 기술은 2015년부터 우리나라도 가능해질 것으로 본다.
Q.기술 상용화는 어느 정도 이뤄졌나. 관련 제품 개발은.
조귀훈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 서기관 : 유전자 진단 시장은 이미 산업화 단계에 올랐다. 다운증후군 등 특정 유전 질환을 배아나 태아 상태에서 발견해낼 수 있을 정도다. 특정 유전자를 보유한 사람은 특정 질환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식의 예측도 이뤄진다. 이에 비해 유전자 치료 시장은 진단 시장만큼 활성화돼 있진 못하다. 임상시험을 실시할 경우 2~3세대에 걸쳐 미치는 영향을 꾸준히 관찰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문섭 VGX인터내셔널 연구소장 : 시장을 유아기, 성장기, 성년기, 노년기로 구분한다면 산업 현장에서 볼 때 유전자 치료 시장이 성장기에 진입했다고 판단한다. 데이터모니터2013 자료에 따르면 2012년 기준 162개 기업이 213개의 제품을 개발 중이기 때문이다. 면역 치료, 희귀유전질환·난치성질환 치료 등에 유전자 치료가 활발히 연구되는 추세다.
오민규 교수 : 마이크로칩 이용 기술력은 상당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는 가벼운 질병에 대해서만 진단이 가능하다. 유전자 검사가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도 진단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Q.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안전성에 대해 확신을 못 한다. 정말 안전한가.
김용우 국립보건연구원 연구원 : 유전자 진단 검사는 과학적으로 안전하고 효용성도 인정된 검사다. 유전자 치료 역시 식약처의 임상시험을 반드시 거쳐야 하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볼 수 있다.
이병재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 물론 안전하긴 하지만 심리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유전자 검사를 통해 본인 생명이 위태로울 심각한 질병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삶의 의욕을 잃을 수 있다.
정문섭 연구소장 : 유전자 치료제는 투여된 유전자에 의한 돌연변이와 같은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있다. 지난 25년간 수백 건의 임상연구를 종합해보면 DNA를 이용한 유전자 치료제와 자가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한 유전자 치료제는 매우 안전함을 확인했다. 바이러스를 이용한 유전자 치료제의 경우 과다 면역반응과 같은 부작용이 관찰됐지만 최근 생명공학 기술의 발달로 바이러스 운반체의 안전성이 높아지는 추세다. 향후 시판될 유전자 치료제에 대한 안전성 우려는 높지 않다고 볼 수 있다.
Q.유전자 검사·치료는 윤리적 문제를 동반할 수 있다.
조귀훈 서기관 : 당연히 윤리적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유전자 검사를 통해 태아의 지능, 외모, 수명, 질병을 파악할 수 있다면 낙태를 한다거나 보험 가입, 직업 선택 과정에서 차별을 받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유전자 치료 기술이 발전한다고 하더라도 특정 질병이 치료되는 과정에서 예기치 않게 다른 질병 유전을 야기해 후대로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김용우 연구원 : 최근 빠르게 발전하는 새로운 유전자 분석 기술로 인해 미국 등에서 개인의 전체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 서비스가 상품화되고 있다. 개인정보보호법에서 유전 정보를 민감 정보로 처리하도록 하고, 개인의 전체 유전자 염기서열은 그 자체로도 식별 가능한 정보일 수 있기 때문에 유전 정보로 인한 개인의 사생활이 침해되지 않도록 유전 정보의 보안에 대해 특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윤성 원장 : 물론 그렇지만 과장된 부분도 있다. 드라마에서 주인공 출생을 의심해 종종 당사자 몰래 머리카락을 보내 친자를 감정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친자 감정은 당사자와 양 부모가 모두 참여하고, 서로 누가 시료를 채취하는지 직접 확인하며, 검사 결과도 법원이나 당사자에게만 공개하도록 규정돼 있다. 생각보다 윤리적 절차가 훨씬 엄격하다.
Q.우리나라 기업들이 세계 유전자 치료 시장을 선점할 수 있을까.
정문섭 연구소장 : 우리나라는 경쟁력 있는 대학과 연구기관, 연구인력을 확보한 국가다. 이를 바탕으로 국내 바이오 기업과 제약회사는 다양한 유전자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이미 선진국이 선점한 치료 분야가 아니더라도, 다른 분야에서 주도적으로 신약을 개발할 역량이 있어 향후 세계 시장 선점 가능성이 높다.
현재 국내 기업들은 DNA 백신과 난치성질환 치료제 연구의 경우 임상 2상 단계이며 자기 면역 기능이 있는 성체세포를 활용한 유전자 치료제 연구는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다. 향후 10년 이내 우리나라 기업이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유전자 치료제를 내놓을 것으로 전망한다.
김태형 본부장 : 개인 유전자 진단 서비스는 빅데이터와 고도의 바이오인포메틱스(IT+BT) 기술을 필요로 하는 산업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한국에는 우수한 IT 인력이 많아 다른 나라에 비해 산업화가 빠른 편이다.
Q.유전자 진단·치료 시장 활성화에 어려움도 있을 것 같은데.
김태형 본부장 :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유례없이 보수적으로 의료법과 생명윤리법을 적용한다. 때문에 기술 인허가 절차가 까다롭고 유전자 관련 기술이 상용화되는 데 어려움이 많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은 유전자정보차별금지법(GINA)을 제정해 많은 연구원이나 개인이 유전 정보 기술을 아무런 제약 없이 확인하고 혜택을 볼 수 있도록 제도를 열어뒀다. 이는 전 국민의 의료비용 감소로 이어진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정문섭 연구소장 : 유전자 진단·치료 기술에 대한 일반 대중의 막연한 두려움이 기술 발전을 저해하는 것 같다. 1999년 미국에서 유전자 치료제 임상 연구 중 환자 1명이 사망하면서 유전자 치료의 안정성을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가 생겼다. 하지만 시험물질이 직접적으로 사망을 유발하지 않았다는 점이 뒤늦게 밝혀졌다. 대중의 막연한 우려로 기술 발전을 늦추면 뒤처질 뿐이다.
Q. 시장 선도를 위한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오민규 교수 : 지금은 관련 기술 개발 부처가 뿔뿔이 분산돼 있다. 또한 정부의 기술 개발 목표 역시 ‘속도’에 맞춰져 있다. 하지만 단지 빨리 개발한다고 좋은 건 아니다. 유전 연구 기술은 신뢰성이 높아야만 상용화가 가능하다. 아무리 빨리 개발해도 신뢰할 수 없으면 결코 산업화되기 어렵다는 말이다. 여러 부처로 흩어진 업무를 통합해 보다 신뢰도 높은 기술을 개발하는 데 정부 부처가 역량을 모아야 한다.
이병재 교수 : 기초연구 투자도 확대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같은 암이라도 미국인이 자주 걸
리는 암과 한국인의 암은 다르다. 한국인에게 적합한 생체 지표를 발굴할 수 있도록 기초연구 투자가 필요하다. 또한 현재 정부는 특정 연구그룹에 지원을 집중한다. 다수의 연구자가 다양한 방식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이뤄져야 한다.
[문희철·김헌주·정다운·서은내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726호(13.10.02~10.08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