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료...사회적 합의 됐으니 이제는 법률 제정"
15년 동안 거듭된 논의를 거쳐 사회적 합의까지 이끌어 낸 '임종기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을 명확히 하기 위해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왔다.
이윤성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장(서울의대 교수·법의학교실)는 '국회보' 10월호 '갑론을박'코너를 통해 15년 전 보라매병원 사건에서 의사가 유죄 판결을 받은 사례를 들며 "단순한 지침이나 고시보다는 법률이어야 그 동안의 불안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며 법률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원장은 "중환자의료는 대상 환자가 회복하리라 예상하지만, 어느 때에 이르러 환자가 회복할 가망이 없고 단지 생명 현상만을 유지하는 의료를 '연명의료'라고 한다"며 "연명의료에 관한 결정을 하려면 환자의 의학적 상태와 자유의사라는 두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7월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제시한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권고'는 오랫동안 논의만 거듭한 연명의료에 관해 처음으로 권위 있는 합의"라고 밝힌 이 원장은 "이를 바탕으로 보건복지부는 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고 언급했다.
이 원장은 "경험 많은 중환자의학 전문의가 있는 대형 병원에서는 권고안 수준의 연명의료에 관한 결정 절차를 이미 시행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의료인이나 가족의 요청에 따라 일관성 없게 결정하고 있다"며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와 함께 "환자가 자신의 뜻을 밝히지 못하고 의식을 잃었거나 정신 질환 등으로 의사결정 능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거나 미성년이라면, 명백한 자유의사를 알 수 없다"며 "환자의 뜻을 추정하거나 대신 결정해야 할 경우가 생길 수 있는만큼 절차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며 법제화를 통해 절차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 원장은 "법제화와 함께 연명의료 결정이 원활히 이뤄지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의료와 통증 관리 그리고 가족과 함께 삶을 정리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하는 호스피스-완화의료 제도가 더 넓게 시행돼야 한다"며 "건강보험도 적극적으로 적용하고, 경제적으로도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를 지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죽음이나 임종에 관해 일반인 뿐 아니라 의료인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 원장은 "의료인들도 교육을 받아서 환자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환자가 자유롭게 의사를 표시하도록 도와주는 일에 익숙해야 한다"며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룬만큼 합의의 최소한을 위해서라도 연명의료에 관한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한편, 정재우 가톨릭대 교수(생명대학원)는 국회보 '갑론을박'을 통해 "연명치료 중단에 관련된 문제의 핵심은 법의 부재가 아니라 윤리적 성찰의 부재"라며 "분명한 윤리적 개념과 원칙에 바탕을 두고 환자를 돌보는 곳에서(호스피스-완화의료) 올바른 연명의료의 결정과 실행은 법이 없어도 이미 가능하다"고 법제화 반대 입장을 폈다.
정 교수는 "법제화보다 중요하고 시급한 일은 윤리적으로 분명한 개념과 원칙에 따라 의료행위가 이뤄질 수 있도록 사람들의 의식을 일깨우고 의료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라며 "우리 사회처럼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생명경시 풍조가 만연해 있는 곳에서 단지 법조문을 만들어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음은 오히려 우려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생명의 가치·삶과 죽음의 의미·의료행위의 본질·의료진의 본분·생명과 건강에 대한 환자의 책임·바람직한 의사·환자 관계 등에 대한 성찰과 교육에 무게를 실었다. 병원윤리위 활성화와 호스피스·완화의료 확산에 대해서는 이 원장과 입장을 같이했다.
관련 기사 : http://www.doctor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91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