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검사 규제에 반대한다.
1, 우생학과 사회적 다윈주의에 관하여: 유전자 결정론의 긴 역사에 대하여.
20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사회적 다위니즘'이나 '우생학'이라고 불리우는 가짜 학문들이 판을 쳤습니다. 다윈의 진화론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이러한 학문들은, '유전학적으로 우등한자'와 '열등한 자'로 인간을 나누고, 이러한 '유전적 우등함'이라는 개념을 '도덕적 우등함'으로 치환했습니다. 결국 이러한 논리 구조의 결과는, 유전적으로 우등한 민족인 서구인들이 열등한 민족들을 ‘식민지 지배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는 결론을 만들었고, 2차대전에서는 나치 독일에게 ‘독일 민족의 순수함’따위의 가짜 논리를 만들어내는 데에 이용이 되어왔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영화 ‘가타카’식의 순수한 유전자나 형질 따위에 대한 절대적인 추종의 상황을 두려워 하게 되는 일반적인 시각은 이해합니다.
2. 우생학은 과학적으로 허구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생학과 사회적 다위니즘은 현재 과학적인 학문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일단, 우등한 유전자라는 개념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 비하여 우등한 정도를 측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떠한 성격, 외모, 지능등의 특성이 다른 특성의 성격, 외모, 지능등에 비하여, 절대적인 가치 하에서 ‘우월하다’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세상은 복잡하고, 절대로 하나의 단순한 가치관 아래에서 이러한 것들을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특성은 어떠한 상황에서 장점이 될 수 있으며, 다른 상황에서 단점이 될 수 밖에 없지요. 여기에 개인의 복잡성을 너머서서, 사회의 복잡성까지 더해지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 집니다. 우생학적인 관점이 바탕에 두고자 하는 절대적인 우등성이란 과학적으로 정의할 수 없는 형태의 것입니다.
3. 우생학은 사회적 상황의 산물이었다.
그렇다면, 우생학과 사회적 다위니즘이 최신의, 각광받는 학문이 되었던 20세기 초반의 상황은 무엇이었을까요? 우리는 사회적 다위니즘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사용되었던 배경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앞서서 이야기한, ‘유전적 우월함’이 ‘도덕적 우월함’으로 치환되는 것은 사실 논리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질서 - 이긴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던 - 에 과학적인 원리와 가치관을 도입하고 싶었던 당시의 사회 구조의 요구에 사회적 다위니즘이라는 학문이 호응한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과학적인 방법에 의하여, ‘유전적으로 우월한자’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우월한자’가 되고 싶었던 사람들이, ‘유전적으로 우월함’에 대한 가짜 가치들을 만들어낸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지요.
4. 현재 우리에게 유전학적 차별이 존재한다면, 그것 또한 사회적 상황의 산물일 뿐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유전적 차별이 사회에 존재한다면, 그것은 사회적 상황 자체를 들여다 보아야합니다.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에는 어리석게도, B형 남자에 대한 차별이 실제로 존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농담삼아’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B형 남자들이 특정한 형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서 혈액형 검사를 금지해야 할까요? 문제는 B형 남자에 대한 차별이지, 제 혈액형이 B형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지 여부가 아닙니다. B형 남자에 대한 차별을 막기 위해서, 혈액형 검사를 금지한다면, 제가 큰 사고를 당했을 때에, 저를 죽음에 이르게 하겠지요. 애초에 제시한 문제를 다시 확인합시다.
지능, 성격, 외모, 질환과 같은 검증받지 않은 비윤리적 유전자검사로 인해 한 사람의 일생이 미리 예단되고 이에 따른 사회적 차별이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도 상존하고 있다.
과학자들이 ‘어떠한 유전자가 어떠한 역할을 한다’라고 말할정도로 정확히 어떤 유전자의 역할을 서술했다면,이러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유전자검사를 하던, 하지 않던 결국 그러한 성격, 지능, 외모, 질환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그 사람의 일생입니다. 이러한 성격,지능,외모,질환을 가진 사람이 ‘차별을 당하는’ 사회가 문제입니까 아니면, 이러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입니까?
(사족으로, 검증받지 않은 비윤리적 유전자검사라는 말 자체가 이 논의에서 다뤄야 하는 도덕론,윤리론적 문제에 대하여 프레임을 제시하고 있으며, 논의를 정확하게 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제 착각일까요?)
5. 유전자 검사는 우생학이 아니라, 개인의 단점을 극복하는 데에 사용될 수 있다. (사회적 구조만 뒷받침 된다면)
유전자 검사를 통하여, 미리 알게된 앞으로 성격,지능,외모,질환등에 특정한 조건을 미리 알게 되었다고 합시다. 이러한 문제들은 그냥 놔둔다면, 결국 그 사람의 일생이 될 겁니다. 그리고, 제시되어 있는 대로라면, 이 사람은 사회적 차별속에서 살게 되겠지요. 하지만, 자신의 특성을 미리알고 있는 개인이, 이러한 특성이 자신이 삶을 영위하는 데에 장애가 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이 사람은 그러한 특성을 제외하기 위한 시술들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특정한 유전자에 의하여 앞으로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을 꿈꾸게 된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이러한 사람이 자신의 유전자를 알고, 그것을 통하여 삶을 조절해 나가는 것은 우리가 얻게 될 축복이지, 절대로 속박이 아닙니다.
6. ‘검증받지 않은 비윤리적 유전자 검사’의 금지는 기술적으로도 불가능합니다. 또는 너무나도 비싼 대가를 치뤄야 합니다.
현대는 유전체의 시대입니다. 우리는 특정한 유전자들을 검사하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의 유전체 전체를 검사하기 위한 기술을 가지고 있으며, 이 기술의 실행에 드는 비용은 극도로 낮아져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정한 유전자검사를 금하기 위해서는, 이미 실행된 유전체 검사에서 특정한 정보를 임의로 누락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유전체 검사의 특성상, 이러한 검사는 실행되지 않은 게 아니라, 감추어져 있을 뿐입니다.감추어져 있을 뿐, 조사를 하지 않은게 아닙니다. 이러한 방식으로는, 우리는 유전체 검사를 할 수 없습니다.
감추는 정도로 만족하기로 한다고 칩시다. 이 경우에도, 만약 새로이 특정 유전자가 ‘비윤리적 유전자’라고 밝혀진다면, 어떻게 할 겁니까? 이미 우리는 감춰지지 않은 영역에서 검사가 끝난 정보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유전체 검사를 할 수 가 없게 됩니다.
결국, 가격이 앞으로 절대 낮아질리가 없는 고전적인 검사 방법을 매우 비싼 가격을 지불하며 계속해야 합니다. 이러한 고전적인 검사 방법은, 크지 않은 비용으로 확인하여 미리 경고하고 치료할 수 있었던 질병에 대한 검사를 누락시킨다는 점에서 윤리적이지 않습니다. 또한, 새로이 발견된 질병에 대하여, 새로운 검사를 수행하도록 강제한다는 점에서 윤리적이지도, 경제적이지도 않습니다.
결론: 유전 정보를 통해 얻게 된 지식을 어떻게 사람을 돕는데 쓰고, 어떻게 이러한 정보를 사람을 괴롭히는데 쓰지 못하도록 할 것인지는 우리가 앞으로 계속 고민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특정 유전자 검사 금지’는 가능하지도 않고, 비경제적이비다. 또한 도울 수 있는 사람을 도울 수 없다는 점에서 비윤리적이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제도의 도입을 반대합니다.
최한솔 생물학박사.
카이스트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