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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살리려 태어난 '맞춤아기'의 권리는…

 

[사진=KBS]
맞춤아기. 시험관 수정 기술을 통해 질병 유전자가 없거나 특정한 유전 형질을 지닌 정상적인 배아를 골라 탄생시킨 아기를 말한다. 주로 희귀 질환을 앓고 있는 자녀를 치료하는 데에 이용할 줄기세포를 얻기 위한 목적이라 생명윤리에 대한 논쟁도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KBS 드라마 '빅'에선 '맞춤아기'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극중 강경준(신원호)이 형 서윤재(공유)를 살리기 위해 태어난 맞춤아기였단 사실이 극적으로 드러나며 예상 밖의 전개를 보인 것이다. 이 드라마의 공식 홈페이지에는 다소 생소한 '맞춤아기'란 소재에 관심을 보이며 궁금해하는 시청자들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사진=`마이시스터즈키퍼` 스틸컷]
이쯤에서 영화 한 편을 소개하려 한다. 2009년 개봉한 미국 영화 '마이 시스터즈 키퍼(My sister's keeper)'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언니를 살리기 위해 태어난 맞춤아기 안나(아비게일 브레슬린)의 이야기다. 11살인 안나는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백혈병을 앓고 있는 언니 케이트(소피아 바실리바)를 위해 백혈구·줄기세포·골수 등을 기증해왔다. 신장 기증 수술을 앞둔 어느 날, 안나는 자기 몸의 권리를 찾기 위해 엄마(카메론 디아즈)와 아빠(제이슨 패트릭)를 고소하기로 결심한다. 언니를 사랑하지만 자신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며 말이다. 특유의 당돌함으로 최고 승소율을 자랑하는 변호사까지 고용한 안나는 전직 변호사인 엄마를 상대로 재판을 벌이게 된다.

단순히 신체의 자유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안나의 모습만을 그렸다면 조금 뻔한 스토리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영화는 맞춤아기인 안나가 태어남으로써 이 가족에게 일어나는 변화와 그들을 둘러싼 말 못할 비밀들이 하나 둘씩 드러난다. 스스로의 잔인함을 인정하지만 아픈 딸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엄마와,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가족의 모습에 죄책감을 느끼는 아빠, 누나와 여동생 사이에 치여 외톨이가 된 아들, 아픈 자신 때문에 가족 모두가 망가져 버렸다고 생각하는 케이트가 있다. 그리고 안나가 부모님을 고소하게 된 '진짜' 이유도 영화 마지막에 반전처럼 밝혀진다.

이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재미는 조연 배우들에 있다. 둘의 재판을 지켜보는 판사 조안은 얼마 전 교통사고로 딸을 잃은 엄마다. 그래서 더 각별하다. 조안에겐 몸의 권리를 주장하는 어린 딸(안나)의 마음도, 아픈 딸을 위해 애쓰는 엄마의 마음도 모두 소중하다. 조안은 이 재판에서 둘의 마음을 잇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다. 또 케이트의 첫사랑 테일러를 빼놓을 수 없다. 케이트는 자신과 같은 병을 앓고 있는 그에게 연민을 느끼고, 둘은 서로에게 살고 싶은 욕구를 북돋아주며 사랑에 빠진다. 이 외에도 아픈 조카를 위해 어설픈 개그를 선보이는 친척들과 세심한 배려로 케이트를 감동케 한 병원 의료진까지, 작은 배역 하나에서도 인간미가 묻어난다.

따뜻하다. '맞춤아기'란 자극적인 소재로 시작했지만 영화는 이 모두를 품어내는 가족 이야기로 번져간다.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가족이란 울타리의 참된 의미를 새로운 각도에서 비춰준다. 드라마를 통해 '맞춤아기'를 접한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하나 더, '마이 시스터즈 키퍼'는 베스트셀러 소설 '쌍둥이별(조디 피콜트 지음)'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영화와 책의 결말이 서로 다르다고 하니 원작까지 챙겨본다면 영화와는 또다른 울림이 있을 것이다.

유혜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