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연명치료 싫다’ 1000명 넘는데…중지·보류 결정 병원은 3.3%뿐
한겨레 원문 기사전송 2012-04-24 21:15 최종수정 2012-04-24 22:36
[한겨레] 지난해 1169명…논의 위한 윤리위 설치 68% 그쳐
말기환자 치료 결정권 개선 안돼…오늘 정책세미나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갖고 있는 말기 환자는 한해 1000명이 넘지만, 각 병원에 꾸려진 윤리위원회가 연명치료를 보류하거나 중단하도록 결정한 곳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인생의 마지막 시기의 치료에 대한 환자 쪽의 결정권이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4일 이일학 연세대 의료법윤리학연구원 교수팀의 ‘2011년 연명치료 현황 조사’ 결과를 보면, 중환자실이 있는 전국 279개 병원 중 조사에 응한 211곳에 입원한 환자들 가운데 연명치료 중단을 고려하고 있는 말기 환자는 1169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2009년과 2010년의 현황 조사에서는 각각 256개, 242개 병원이 참여해 1555명, 1341명이 연명치료 중단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한 병원당 연명치료 중단을 고려하고 있는 말기 환자 수는 2011년과 2010년에 5.5명, 2009년에는 6.1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연명치료 중단을 고려하는 경우는 주로 말기 암 환자(전체의 33.2%)이거나 지속적인 식물인간 상태(21.9%)인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연명치료 중단 여부를 논의할 위원회가 아예 없는 병원도 적지 않았고, 위원회가 있다고 해도 연명치료를 보류하거나 중단하는 결정을 내린 병원은 거의 없었다. 우선 병원윤리위원회가 있는 곳은 211개 병원 가운데 142곳(68%)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연명치료를 보류하거나 중지하도록 결정한 병원은 7곳으로 3.3%에 지나지 않았다. 윤리위를 운영하지 않는 병원은 그 이유에 대해 ‘특별한 윤리적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거나 ‘인적 혹은 재정적 자원이 부족해서’라고 대답했다.
이 교수팀의 연구는 보건복지부가 2006~2011년 한시적으로 운영한 생명윤리정책연구센터의 의뢰를 받아 이뤄진 것으로, 25일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이 주최하는 ‘한국에서의 연명치료 중지, 어디로 가야 하나?’라는 정책세미나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이 교수는 “2009년 세브란스병원의 이른바 ‘김 할머니’ 사건 뒤 불필요한 연명치료 중단과 이를 위한 사전의료의향서(위중한 상황에 처했을 때를 대비해 연명치료를 받을지에 대해 미리 의사표시를 한 문서) 쓰기 운동 등이 벌어졌지만 여전히 현실에서는 극히 미미한 수준”이라며 “말기 환자들의 치료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2009년 5월 대법원이 세브란스병원에 입원중이던 ‘김 할머니’ 사례에 대해 처음으로 가족들의 연명치료 중단 요구를 인정하면서 이를 둘러싼 논의가 활발하게 벌어졌다. 이후 의료계는 ‘연명치료 중지에 관한 지침안’과 사전의료의향서 등을 만들었고,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논의됐지만 통과되지는 못했다. 연명치료 중단을 두고 저소득층 환자들의 치료받을 권리를 축소시키거나 생명 경시 풍조를 낳는다는 비판도 있어 여전히 논란이 진행중이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