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헤이스팅스센터 보고서-게놈시대 특집호 서문] 누구를 위한 건강인가? 생명윤리, 그리고 게놈의학의 정의를 위한 문제제기

생명윤리

등록일  2020.07.09

조회수  189

※ 기사. Health for Whom? Bioethics and the Challenge of Justice for Genomic Medicine

https://onlinelibrary.wiley.com/doi/full/10.1002/hast.1149

 

이 지식은 바뀌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DTC 유전자검사 회사인 23andMe의 검사 동의서의 첫 구절임. 이 문구는 유전 지식이 오늘날 인간의 삶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입증. 유전자 기술을 옹호하는 의료인과 소비자들은 그것이 전례없는 혜택을 가져올 것이라고 이야기함. 게놈의학에 대한 이 같은 희망적인이야기는 이제 점점 더 비판을 받고 있음. 하지만 이런 스토리텔링은 유전학과 관계가 있든 없든 의료가 그 비용을 정당화하거나 상품을 팔 때 흔히 사용됨.

☞ 게놈의학의 전망에 대한 비판적 논의: E. T. Juengst et al., “After the Revolution? Ethical and Social Challenges in ‘Personalized Genomic Medicine,’” Personalized Medicine 9, no. 4 (2012): doi:10.2217/pme.12.37.

 

의료유전학은 의학의 실행과 연구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제도가 근본적으로 환자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전제에 바탕을 두고 있음. 다시 말해 게놈의학은 시작부터 의심스러운 혜택과 덕목을 전제로 하고 있음. 더 의심스러운 것은 의학제도가 우리 모두의 삶을 공평하게 개선해줄 것을 당연시하는 대중의 믿음임. 의학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선하다는 믿음은 의학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의 핵심에 놓여 있음.

 

생명윤리학자들은 이런 믿음이 어떤 경우에는 잘못되었거나 아니면 최소한 과장되었음을 반복적으로 지적해 옴. 의학과 인류의 안녕 사이의 관계는 굉장히 복잡함. 생명윤리학이라는 분야는 의료인 개인차원뿐 아니라 의학 제도의 차원에서 자행된 잔혹행위에 대한 반성으로서 성립되었음. 장애인들을 집단적으로 살해한 독일의 Aktion T4 program과 미국의 터스키기 및 과테말라 매독실험부터 장애인에 대한 인체실험과 안락사까지, 또 미국 인디언 보건국(Indian Health Service)이 자행한 인디언 여성 수천 명에 대한 강제 단종수술 및 학대까지, 나아가 노예에 대한 고문과 인체실험에 이르기까지 의학의 역사는 그것이 다른 제도들보다 더 윤리적이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줌.

☞ 우생학과 비윤리적 의학 활동에 관한 연구: H. A. Washington, Medical Apartheid: The Dark History of Medical Experimentation on Black Americans from Colonial Times to the Present (New York: Anchor Books, 2008); P. A. Lombardo, ed., A Century of Eugenics in America from the Indiana Experiment to the Human Genome Era (Bloomington, IN: Indiana University Press, 2011); R. A. Hogarth, Medicalizing Blackness: Making Racial Differences in the Atlantic World, 1780-1840 (Chapel Hill, NC: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2017); A. Bashford and P. Levine, The Oxford Handbook of the History of Eugenics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0).

 

의학이 모든 사회 구성원의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종종 소외된 사람들의 안녕을 해치고 억압하기도 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의학이 자동적으로 또는 필연적으로 선한 것이라는 믿음을 버려야 함을 알려줌. 이것은 단순히 의학의 역사만이 아니라 생명윤리학의 역사에도 적용되는 비판임. 의학사, 과학사, 생명윤리 분야의 연구자들은 생명윤리학의 이상의 실현이 오늘날까지도 요원함을 보여주었음. 이번 호 헤이스팅스 센터 리포트의 특집 논문들은 의학에 대한 비판을 제시함으로써 생명윤리의 역사가 보여준 발전의 방향을 좇을 것임. 또한 이 특집호는 생명윤리학의 이상에 부응하는 최신 성과들을 따라 생명윤리학 그 자체에 대한 비판 또한 담아낼 것임.

 

생명윤리학이 앞서 언급한 사건, 정책, 법률에 대한 성찰 속에서 부상했다는 사실은, 이 분야가 생명보다도 지식과 이익을 더 중시하는 일부 의학자 및 의사들의 관점에 대한 반성으로서 성립되었음을 의미. 생명윤리학은 불의에 대한 대응으로서, 의학의 이름으로 자행된 배제, 고문, 죽음으로 고통받은 사람들에 대한 증인으로서 시작됨. 생명윤리학은 의학에게 역사와 현실에 비추어 그 효과를 냉정하게 바라보고 스스로를 변혁할 것을 요구함.

 

생명윤리학에 대한 전통적인 인식의 핵심에는 네 가지 원칙이 있음: 자율성, (), 무해성, 그리고 정의. 하지만 Leslie P. Francis가 지적하듯, 정의는 생명윤리학뿐 아니라 다른 응용윤리학 분야의 교육과 실천에 있어서 가장 덜 중요한 항목임. 정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다른 설명이 존재하며, 그것은 사회철학, 정치철학, 도덕철학이 중첩되는 영역에 놓여 있음. 정의를 생명윤리학의 원칙으로서 받아들여야 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합치되지 않음. 만일 정의를 생명윤리학의 한 원칙으로 수용하더라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의미있는 행동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존재. 마지막으로, 이번 특집호의 여러 저자들이 제기한 바와 같이 정의에 관한 고민이 심각하게 다루어질 때조차 그 고민의 범주에 역사적으로 억압되거나, 심지어는 치료의 대상이 아닌 호기심의 대상으로서 취급되어 온 사람들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비판 또한 존재.

☞ 생명윤리학의 정의에 관한 Leslie P. Francis의 논문: L. Francis, “The Significance of Injustice for Bioethics,” Teaching Ethics 17, no. 1 (2017): 18.

☞ 생명윤리학의 정의 원칙에 관한 비판적 논의: K. Dannder Clouser and B. Gert, “A Critique of Principlism,” Journal of Medicine and Philosophy 15, no. 2 (1990): 21936.

 

이 특별호를 이끄는 전제는 정의가 의학 규범의 핵심에 있고, 생명윤리가 의료와 관련된 정의에 문제를 제기할 의무가 있다는 믿음과 희망임. 이런 점에서 정의는 의학의 생명임. 우리는 인간의 삶에서 유전학 지식이 지닌 역할 등 오늘날 의학이 직면한 문제에 대해 이와 같은 더 크고 역사적이며 간학제적이고 비판적, 윤리적인 맥락에서 살펴보아야 함. 이 특별호의 두 번째 전제는 유전학 지식이 선물인 동시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임. 유전학 지식은 한편으로는 질병에 대한 유전적 소인을 밝히고 우리의 조상들이 밟아 온 지리적 경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선물과도 같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의무와 새로운 사회 계층,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감시를 만드는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임. 유전학 지식이 선물이라는 인식은 상식이 되었기에, 이번 특별호에서는 의학이 진정한 정의에 도달하는 것을 방해하는 부담들에 초점을 맞추기로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