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point] 게놈 의학 분야에서 환자의 친족에게 유전병 정보를 공유할 전문가 의무가 법적 근거를 얻음
※ 기사. Professional duties are now considered legal duties of care within genomic medicine
https://www.nature.com/articles/s41431-020-0663-3
※ 판결문. England and Wales High Court (Queen's Bench Division) Decisions
https://www.bailii.org/ew/cases/EWHC/QB/2020/455.html
ABC v St Georges Healthcare NHS Trust and Ors 사건에 대한 재판이 영국 고등법원에서 종결되었음. 이 사건은 아내를 죽인 한 남성이 구금되어 정신과 치료를 받는 동안 헌팅턴 병이라는 진단을 받았으나, 그 사실을 임신한 딸 ABC에게 알리기를 거부하면서 촉발됨. 그는 ABC가 헌팅턴 병의 유전적 소인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아이를 지울 것이라고 생각하여, 자신의 주치의로 하여금 ABC에게 헌팅턴 병 발생 가능성을 알리지 못하게 함. 그러나 주치의가 훗날 실수로 그 사실을 ABC에게 누설함. ABC는 부친의 진료를 담당한 NHS Trust가 그녀에게 헌팅턴 병의 유전 가능성이 있음을 알려줄 의무가 있었음에도 그것을 태만시 했으며, 그로 인해 그녀가 적절한 시기에 임신 중절을 할 수 없었다고 소송을 제기했음. 이 재판에서 ABC는 승소하지는 못했지만, 영국 고등법원의 판사 Yip은 ABC의 주장이 부분적으로 타당하다고 평가함. 이 평가는 임상유전학 및 유전상담서비스 분야의 의료행위에 시사점을 제공. 이 사건에서처럼 유전의료 전문가들은 환자뿐 아니라 그 가족들과 진료상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경우가 많음.
Yip은 의사가 원고(ABC)의 이익과 그 부친의 비밀보호라는 두 가치 사이에서 균형잡기(balancing act)를 하도록 법적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 ‘공정하고, 정당하며, 합리적’이라고 결론을 내림. 여기에서 법적 의무의 범위는 두 가치 사이의 균형점을 도출하는 것뿐 아니라 그 결과에 따라 행동하는 것까지 포함. 이에 따르면 의료 전문가들은 환자가 질병의 유전 위험성을 남들에게 알리고 싶어 하지 않더라도 그것을 환자의 친족에게 경고할 법적 의무가 있음.
2019년 Joint Committee of Genomics in Medicine의 전문가 권고사항은 개인의 유전 정보에 대한 비밀보호 및 정보 공개 동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
만일 환자의 유전정보를 공개할 필요가 있다면, 의료인은 다음과 같이 해야 함.
1) 환자에게 정보 공개에 대한 동의를 얻을 것
2) 만약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a) 경험이 풍부한 동료 전문가들과 논의할 것(예를 들어 병원 임상윤리위원회나 Genethics Forum 등)
b) 비밀을 공개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환자 본인에게 알리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할 것
c) 비밀을 공개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라고 판단될 경우 환자의 친족과 연락할 것
d) 유전적 위험성을 알리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만 공개할 것
e) 비밀을 공개하려는 정당한 이유 및 환자의 비밀보장과 그 가족의 건강 보호 사이의 균형잡기를 시행했다는 점을 기록해 둘 것
환자의 친족에게 유전병의 위험성을 알릴 법적 의무
ABC v St George’s NHS Trust & Ors 사건은 유전 정보에 대한 비공개가 ABC에게 심각한 심리적 피해를 야기했음을 보여줌. 이 사건으로 인해, 유전 정보의 공개/비공개에 의해 영향을 받을 ‘위험성이 있는’ 가족 구성원들이 자기 집안의 유전 정보에 대해 정당한 지분을 가질 수 있다고 여겨지게 됨. 이를 통해 의료 전문가에게 가족 구성원의 이해관계를 고려할 의무가 있다는 문제가 이슈화 됨.
Yip은 법적 의무가 모든 친족에 대해 적용될 필요는 없으며, 기존 전문가 의무와 같은 맥락에서 전문가 집단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시행되어야 한다고 명시했음. 이 말은 의료 전문가들이 모르는 사이인 혹은 ‘친밀’하지 않은 친족까지 추적할 필요는 없음을 의미. 친족이 자주 동참하는 통상적인 유전상담서비스라면, 임상상의 ‘친밀함’이 형성되기 마련임. 하지만 ‘친밀함’에는 다양한 정도가 있음.
유전의료 전문가들은 발단자로부터 친족들의 개인정보(이름, 출생일, 주소 등)를 듣게 되기도 함. 이렇게 의료 전문가들이 친족들을 만난 적이 없음에도, 그들에게 연락하기에 충분한 정보를 가진 경우 ‘친밀성’이 형성되었다고 보아야하는지 불명확함. 만일 유전상담가들이 전문가 규약에 따라 ‘환자와 그 가족’ 모두를 돌본다면, 그들은 친족에 대한 의무의 일환으로서 최소한 친족들에게 연락하고자 시도할 것임. 현실에서 이와 관련된 전문가들의 행동은 다양. 대개는 의료 전문가들이 발단자로 하여금 유전 정보를 자신의 친족들에게 전달하도록 독려함. 하지만 발단자가 거부함에도 의료 전문가가 이를 친족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판단할 때에는 친밀도와 관계없이 친족에게 연락해야 함.
임상유전학 서비스에서는 여러 가족구성원을 만날 수 있음. 이 경우 가족구성원들은 의료팀 안에 있는 서로 다른 의사들을 ‘알게’ 됨. 이 경우 의료팀과 가족 사이에 친밀성이 형성됨. 그것이 반드시 개별 의료인과 특정 친족 사이의 일대일 관계일 필요는 없음. 이런 점에서 ‘친밀성’의 의미를 보다 명확히 할 필요가 있음. ‘친밀성’이 의료인과 환자 간의 일대일 관계에서만 성립될 수 있는지, ‘친밀성’이 의료서비스의 전달에 적용될 수 있는지, 나아가 의료서비스 전달이 원거리에서도 가능한지가 고려되어야 함. Yip은 의사가 만난 적도 없는 환자까지 돌볼 의무는 없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그러기 어려운 상황들이 있음. 예를 들어 의사는 파일럿이 비행기를 추락시킬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경우, 그 비행기의 승객들을 돌볼 의무가 있음. (그리고 이 사례에서 의사는 실제로 어떤 승객과도 직접적인 친밀성을 쌓지 않음)
친밀성을 기준으로 친족에게 유전 정보를 알릴 의무를 정의하는 것은 합리적임. 하지만 유전정보의 공유성(가족성)과 가족을 치료 단위로 하는 유전학서비스의 특징을 고려한다면, 친밀성을 더 명확히 정의할 필요가 있음.